■기획 / 아줌마들의 변신
'아줌마 반란부대'가 몰려온다
'미시'와 '부엌데기' 사이 위상 바로잡기... "살맛나는 세상 우리가 만든다"

    
‘두터운 화장, 반짝거리는 옷과 장식품, 퍼머머리와 번들거리는 루즈, 불안한 눈빛.’ 지난 3월 ‘아줌마 사진전’을 열었을 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형근씨가 앵글에 담은 아 줌마들의 전형적 모습은 이랬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재하는 아줌마들 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는 그의 기획의도는 그 자체로 많은 주목과 공감을 얻었다.
소비 생활`-`교육 주체로 … ‘新아줌마’ 부상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아줌마들이 당당해졌다. 몰염치와 무식-무능-주책의 상징처럼 치부되던 그 ‘아줌마들’ 대신 소비와 생활, 교육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자각한 ‘신 아줌마’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의 당당함은 전철 안에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의자에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뻔뻔함과 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과거 ‘가족이기주의’에 빠져 있던 모습에서 사회영역으로 관심 을 확대하고 각종 소비자단체나 상담기관, 지역사회단체에 참여한다.

그리고 빠르게 ‘세력화’하고 있다. ‘세력화’의 맹아는 도처에서 확인된다. 심지어 ‘아 줌마 반란부대’ 등의 단체를 만들거나 ‘신주부 캠페인’ ‘사회주부운동’ 등을 벌이며 ‘세상바꾸기’에 나서겠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지난 7월14일 결성된 ‘신주부캠페인추진본부’(대표 최윤희)는 신주부캠페인 1탄 ‘아줌마 가 아줌마 기 살리기’를 비롯해 ‘엄마도 즐거운 명절’ 음반 제작, ‘신주부 아줌마 대축 제’ 등을 벌였다. 각계각층 전문직 여성과 보통 전업주부 등 20여명의 아줌마 기획위원들 이 주축이 된 신주부캠페인추진본부는 신주부를 ‘자기인생의 주인임을 알고 새롭게 변화하 려는 의지를 통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여성’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신주부는 자신의 이름과 시간, 공간, 경제력, 일을 갖는다”는 신주부 권리장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9월9일 발족한 ‘아줌마반란부대’(대장 김용숙)도 ‘아줌마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고 선포해 주목받고 있다. 아줌마의 힘으로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아 건강한 사회 를 만들고, 아줌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 자긍심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이 내놓은 아 줌마 헌장에는 ‘우리는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첫 항을 위시해 ‘사회부조리 와 싸워 나가며, 나의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반성하고, 남편과 가족의 협조를 당당하 게 받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설립 초부터 주부들을 주요 운동주체로 설정해 온 한국여성민우회(대표 이경숙)는 지난 97 년부터 사회주부대회를 열어 왔다. 겉멋에 들뜬 ‘미시’와 세상물정에 어두운 ‘부엌데 기’의 양극단을 치닫는 주부들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주부’라는 개념을 도입한 뒤 80년대 말부터 생활협동조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여성민우회 지역 지부에는 이미 전업 주부들이 활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부가 가정뿐 아니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사회주부운동의 목표.

이 밖에도 지역마다 마을마다 주부들이 모여 벌이는 자원봉사조직이나 생활모임들은 주부들 이 지역정치, 교육, 환경 등에서 무서운 감시자이자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 다.

이들 ‘신아줌마’는 교육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다. ‘내 아이만 잘 봐달라’고 촌지봉투를 내미는 게 옛 아줌마들의 참여방식이었다면, 요즘의 치맛바람은 학교운영에 참 여하고 교육방침에 문제가 있을 경우 교사에게 당당히 따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요즘 젊 은 엄마들 무서워요. 덕분에 교사들도 조심하게 되죠”라는 게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30)의 말.

기관투자가 뺨치는 주식투자 실력

이런 흐름 덕인지 요즘은 아줌마들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도 예전과 다르다. ‘엄마도 챙기 자’는 취지의 ‘여성전용보험’ 등이 생겨나고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가 ‘힘내 라 아줌마’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따로 개최되기도 한다. 광고시장에서 ‘아줌마 스타’들 이 뜨고, TV아침프로에서 ‘내가 바로 아줌마’임을 당당하게 외치는 출연자들이 늘고 있 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상자기사 참조).

PC통신이 제공하는 사이버공간은 아줌마들의 정보화 교육장이자 또 하나의 ‘아줌마 스 타’ 양성소. 현재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통신서비스 업체마다 개설된 주부동 호회(go jubu)에는 1000~3000여명의 회원들이 등록돼 활동 중이다. 다른 사회활동에 비해 공간상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통신은 아줌마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애 업은 아줌마가 객장에 나타나면 상투’라던 증시 격언도 옛말이 된지 오래. 각종 통로 를 통해 재테크 공부에 숙달된 아줌마들은 기관투자가 빰치게 주식투자를 해내기도 한다. “전에는 아줌마 투자가들이라면 소위 ‘묻지마 투자’의 주체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 다. 객장에서 ‘제대로’ 공부한 아줌마 투자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줌마 고객들이 많이 찾는 한진투자증권 분당지점 김현석대리의 말.

“여성들 사회진출은 세계적 대세 … 거품 아니다”

아줌마들이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뜨는’ 이유는 경제활동과 지역사회에서 아줌마의 영향 력이 점차 커지고, 주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욕구의 방향은 아직 일정치 않다. 여성민우회 윤정숙사무처장은 “가사와 육아로 상징되는 주부의 정체성은 주부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틀에 맞춰가는 과정이었 을 뿐”이라며 “주부들이 이 정체성을 해체하면서 진정 내가 원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지를 질문하고, 이 질문이 사회적 관심과 맞아떨어질 때 건강한 지역사회를 건설하는 동력 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아줌마운동은 한쪽으로는 여성운동, 다른 한쪽으로는 시민운동의 기류 와 맥이 닿는다.

신주부캠페인추진본부 육정희사무총장은 최근의 아줌마 운동을 ‘여성운동의 대중화, 문화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엘리트 중심 여성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부들이 삶 속에 서 스스로 권리를 찾아나가도록 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유권자로서 소비자로서 교육의 주 체로 거듭나기를 꾀하는 것이죠.” 남이 바꿔주기 전에 스스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궁극 적으론 앞으로 세대에서 남녀차별을 깨고 양성평등문화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 다.

실제로 신주부캠페인본부에서 벌인 ‘엄마도 즐거운 명절 만들기’ 음반 보급사업은 한국에 서도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경상도 지방에서 가장 호응이 컸다고 한다. 대구시청 과 장이나 경주엑스포 시설단장, 대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테이프를 보내주면 배포 하겠다”고 연락해 올 정도.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아줌마 캠페인이 혹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여성 신문사 이건 사업홍보부차장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세계적 대세고, 사회로 진출한 아줌 마들이 뭔가를 하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최근의 아줌마 신드롬은 거품 이라기보단 대세”라고 말한다.

기존 권위체계에 편입돼 있지 않은 아줌마들에게 “세상을 밀고 가는 건 지식이 아니라 상 식”. 그래서 세속의 권위나 위계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들만의 강점 이다. 21세기는 정말 자각한 아줌마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棟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작은 것부터 제 목소리 찾기”
지난달 출범 … 홈페이지`-`총회 준비 등 勢 확장 나서

“우리들의 본업은 살림이다. 아이 키우고, 집안 구석구석 챙기고, 모든 일을 묵묵히 해왔다. 가족 구성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살림을 하면서도 우리는 수다와 무식, 염치없음, 가족이기주 의의 대명사로 매도당했다.”

지난 9월9일 창립대회를 가진 ‘아줌마반란부대’의 선언문 일부. ‘아줌마반란부대’는 김 용숙씨의 최근 저서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에 공감한 주부들이 뭉쳐 만든 단체다. 당연 히 대장은 김용숙씨가 맡았다. 그가 내미는 명함 직함란에는 아예 ‘아줌마’라 적혀 있다.

현재까지 회원으로 가입한 아줌마는 100여명. 아가씨 같은 아줌마부터 할머니 같은 아줌마 까지 망라돼 있지만,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충천해 있다는 점에선 하나같다. 10여년간 민 원문제로 싸우다 함께 문제를 풀어보려 ‘부대’에 가입했다는 소부영씨(50) 같은 아줌마도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 정기총회 준비, 회원확대 사업 등이 착착 추진중. 사무실을 따로 갖지 않고, 게릴라 식으로 모임을 벌일 예정이지만 월 2회의 총회는 걸스카우트 회관을 빌 리기로 했다.

부대장 이정자씨(39)는 “아줌마들이 누구네집 숟가락이 몇개라는 둥 수다만 떨 게 아니라 좀더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게 모임의 취지”라고 간명하게 설명 하며 당장 벌일 사업으로 예절교육, 민원서류작성법, 민박, 탁아소, 봉사활동 등을 든다.

회원 김성숙씨(51)는 “남편도 집에서 푹 퍼져 있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듯해요. 아이들도 ‘우리 엄마, 뭔가 하는구나’고 좋아하고. 활동하는 엄마가 더 보기 좋은 것 아니겠어요. 공감대도 형성되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악 출발한 마당이라 아직 미숙한 점이 적지 않다. “‘반란’이란 단어에 거부감 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첫 임원회의에서부터 나오기 도 했다. 대안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이 제안은 다음 총회 안건으로 넘겨졌다.

아줌마도 훌륭한 ‘무기’
진행자로 광고로 상품가치 높여

주부를 대상으로 한 아침프로가 막강 파워를 행사하면서 “내가 바로 아줌마”임을 내세우 는 연예인들이 팔리고 있다. 이들은 아줌마임을 내세울수록 진가를 인정받는 분위기. 라디오 토크프로 진행자로 인기를 모으는 최유라씨가 대표적 케이스. 그는 ‘최유라의 즐거 운 요리&살림 이야기’라는 저서까지 내는 등 요리와 육아의 달인임을 트레이드 마크로, 라디오 프로에서는 아줌마스러운 수더분한 수다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과거 청순가련형 탤런트에서 “아이 셋을 낳고 아줌마가 되어 다시 세상에 나왔다”는 금보 라씨도 이전보다 훨씬 친근하고 성숙해진 모습이라는 게 중평. 그는 CATV 홈쇼핑 채널에 서 한 코너의 진행자를 맡아 ‘주부연예인 판매시대’를 이끈다. 기관총 쏘듯 상대를 제압 하는 화술로 브라운관을 누비는 경향신문 유인경기자 또한 TV출연 초기의 지적인 커리어 우먼 이미지에서 ‘아줌마다운 푼수떨기’로 전략을 수정해 성공한 케이스. 이들보다 윗세대로 엄앵란 전원주 김수미씨 등이 이미 지난해부터 광고시장에서 원조 아줌 마로 성가를 높였다. 그리고 성교육강사 구성애씨, 탤런트 서정희씨 등이 각기 성교육아줌마 와 살림꾼 등의 특색을 내세워 아줌마의 상품가치를 드높였다. 최근에는 김희애 신애라 하희라 변정수 등이 처녀적 우아함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육아와 가 사에 노력하는 젊은 주부역을 소화해 내고 있어 신세대 여성연예인들의 아줌마부대 합류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방송이나 광고의 상업주의와도 연결되지만, 아줌마층의 높은 구매력과 영향 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제일기획 고은숙기획담당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