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한번 만들어 봐요, 건강한 아줌마 문화!
  • 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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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

우리 한번 만들어 봐요, 건강한 아줌마 문화!



아줌마, '3포족'이라 불린다. 우아함을 포기하고,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부끄러움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펑퍼짐하다, 뻔뻔하고 당당하다. 파마 머리에 숨넘어가는 웃음 소리. 버스든 지하철이든 자리만 나면 몸을 날려 엉덩이를 들이민다. 우르르 온천욕을 떠나고 시도 때도 없이 수다를 떤다. 자식을, 남편을 위해서라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가 따로 없다' 이것이 아줌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란다.

탐욕과 뻔뻔함, 무례함이 아줌마를 대표하는 듯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의 아줌마는 6·25전쟁과 60, 70를 관통해오면서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억척스러운 이미지를 쌓아 왔다. 60 기지촌의 '딜러 아줌마' '돼지 아줌마'에서 시작해 '아모레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보험 아줌마'가 기억날 것이다. 이 때의 '아줌마'라는 말에는 생계를 걸머졌던 억척주부에 대한 예의와 안쓰러움이 녹아 있다.

그러나 80 이후 유한계급의 아줌마들이 부동산 바람, 춤바람, 도박바람으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면서 '아줌마'라는 표현은 요즘의 부정적인 뜻을 획득하게 됐고, 드디어는 "아줌니들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 "아줌마들 때문에 울 나라 망한다"등 청소년들의 비아냥 대상이 되고 유머의 주인공으로 조롱받기 시작했다. 불과 2, 3년된 일이다.

따지고 보자, 아저씨들은 어떤가? 버스나 전철에서 아줌마들이 칼 루이스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벌겋게 술에 취해 여성들 뒤에서 치근덕 거리는 아저씨, 남 생각 안하고 다리 쩍 벌리고 앉아 있는 아저씨들은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사회적 체면이 높은 아저씨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해지는 것 또한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아저씨나 아가씨에 비해 유독 아줌마가 폄하되는 것은 아줌마가 열등한 집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남성보다 열등한 성(性)으로서 여성, 젊음에 비해 열등한 가치로서 늙음, 직업을 가진자에 비해 돈을 벌지 못하는 전업주부 등.. 따라서 아줌마가 비하되는 일차적인 원인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적이고 남녀차별적인 가치체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지독히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는 여성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보다 날씬함, 여성스러움, 아름다움으로 강조된다. 여성은 예쁘고 날씬해야 그나마 취직도 되고 궁극적으로는 유능한 남자와 결혼이 가능하다.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활동해온 사회와 깨끗이 단절한다. 결혼후 사회와의 유일한 통로는 남편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아이라도 낳게 되면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살림살이에 푹 파묻히게 된다.

주부들의 사회적 참여가 막혀 있다보니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게 되고 가치관은 표피적 감각과 물신주의에 함몰되고 만다. 경제적 여유와 힘을 남편의 출세와 아이들의 교육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아줌마 문화는 외국에 비해 전업주부의 비율이 높은 우리의 독특한 사회 구조와 연관이 있다. 사회적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주부들은 집에서 인정받아야 했고 이것이 가족 이기주의로 왜곡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아줌마는 우리의 독특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잉태된 특수계층이라는 것.

남편과 자식을 위한 헌신적 희생의 대가로 주부들은 가정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과 상관없이 가족은 빠르게 해체돼 갔다. 소위 빈둥지 증후군의 공포에 떠는 아줌마들의 정신적 허기는 급기야 프랑스 정부 관광청이 만든 '한국 관광시장 연구보고서'의 신종 마케팅 용어 '아줌마(adjumma)'를 등장시켰다. 그 정의는 '40대 이상 집에 있는 여자들. 자녀들을 다 키운 뒤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한국여성'이다. 파리의 고급 쇼핑센터에 출몰해 싹쓸이 쇼핑을 하는 한국 특유의 구매집단을 분석하니 아줌마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튀어 나왔고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해 발음 그대로 아줌마라는 이름을 사용해 그 집단을 정의했다는 설명이다.

90대 아줌마들은 교육수준이나 경제수준이 10년, 2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회적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도 훨씬 강하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든 여성을 필요로 하는 직종은 일용직이나 단순직 혹은 서비스업종에 한해 있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반드시 취업을 통해서만 이러한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사회를 살리는 모성'을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집에만 갇혀있던 아줌마들을 사회적으로 유인할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뜻을 같이 하는 아줌마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사회참여를 하게 되면 성취감과 연대의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많다. 가부장적인 제사문화 바꾸기, 새로운 결혼문화 만들기, 아줌마 자신들의 문화 만들기, 그리고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자치단체장 선거 등에서 아줌마들이 실질적인 압력집단으로 힘을 발휘하기 등등..

이러한 사회참여는 개인의 삶과 함께 사회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도와준다. 개인, 가족, 집단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힘을 합하는 것이 좀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키워 나갈 때 아줌마들의 활동이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줌마는 무한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남성의 시선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부끄러운 20대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출산 육아를 통해 생명존중 사상을 익히고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또 인생이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어느 정도 맛보았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욕구도 강하다. 이런 에너지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자료 : 월간중앙 제287호 1999. 10, 경향신문 1999. 8. 24, 여성신문 1999. 5. 7,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