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으며 쉽게 내뱉는 말이 ‘아줌마’이다. 지금은 종영이 되었지만 ‘아줌마’라는 TV 드라마가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는데, 그 만큼 아줌마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젊은 사람들은 ‘아줌마’가 일없이 놀고먹으며 모이면 계를 만들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예의나 공중도덕과는 거리가 멀고, 관심사라고는 온통 남편과 자식밖에 없다고 여긴다. 또 큰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은 얘기를 1시간 이상 떠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줌마=교양 없는 여자’라는 도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1995년 5월 프랑스 관광청이 만든 ‘한국 관광시장 보고서’에는 신종 마케팅 용어로 오른 ‘아줌마(adjumma)’의 정확한 정의는 이렇다. 마흔이 넘어 집에 있고 자녀들을 다 키운 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국 여자.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줌마의 단어에 내포된 의미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우리 여자들은 ‘아줌마’에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에 무감각한 것일까? 스스로 체념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타오르는 욕망과 자신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단지 휴화산처럼 잠복기에 들어가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부모와 같은 항렬에 있는 남자의 아내, 부인네를 높이어 정답게 부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아주머니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아줌마의 경계선은 무엇인가. 결혼 뒤 교양 있고 지혜롭게 변하면 아주머니, 짜증나게 변하면 아줌마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짜증난다는 것인가? 쉽게 자신을 버리고 편한 아줌마의 세계에 안주해 오직 자신과 남편의 인생에 더부살이하면서 가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정작 자신의 성숙에는 나태하며, 공중도덕이나 체면, 염치가 없으며 자신의 이름조차 없는 여자. 바로 이것이 짜증나게 변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아줌마가 변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아줌마가 가족이기주의에서 벗어나고 세상을 아우를 수 있게 될 때, 스스로 성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사회의 한 주체로 바로 설 때 세상은 바뀐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