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 계시옵니까?

지금 당장 어머니의 앨범을 펼쳐보자. 거기에는 나팔바지와 과장된 통바지,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가 있을 것이다. 그 아가씨는 긴 생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앙증맞은 핸드백을 걸치고 있다. 지금 거리를 활보하며 아가씨라 불리는 젊은 여성과 별반 차이 없는 사진 속 그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아줌마가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모습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닐 때 꿈꿔왔던 미래 자신들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아가씨들이 바라는 2,30년 후의 자신들 모습이 아니듯.

  
아름다운 여자만이 여성으로 인정받는 사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줌마의 정의를 '자아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본능에 따라 편안하게 행동하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닌 여자'로 간단하게 결론 내린다. 여기에는 아가씨 시절의 아름답고 싱그러운 외모를 잃고 퍼져버린 모습과 그러한 젊음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무신경함, 게으름에 대한 조소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결혼후의 변화가 더욱 뚜렷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몇 번의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더 이상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몸을 갖게 되는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 모습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아줌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역으로 보면 20대 젊은 미혼 여성들에게 아름답고 날씬한 외모가 너무나 큰 의미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의 유지는 불특정 남성들의 시선을 통해 '여자'로 대접받을 수 있는 제일의, 그리고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을 '아가씨'와 '아줌마'로 구분하는 기준으로써 외모가 갖는 비중은 이 사회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큰 백화점에는 아가씨들이 입는 옷과 아줌마들이 입는 옷들이 '숙녀복'과 '부인복'으로 층을 달리하여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화장품 역시 나이대별로 세분화되어 여성들의 나이 먹음과 외모, 그리고 여성성의 밀접한 관계를 상품화하고 있다. 패션과 스타일에 있어서 아가씨들은 정신없이 바뀌는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로 대우받지만, 돈 잘 버는 남편의 '사모님'이 못되고 자신을 위해서 몇 푼 쓰기도 아까워하는 아줌마들을 위한 유행은 별다른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

  


아줌마, 필수에서 선택으로

백화점 세일 때 식구들 것을 한푼이라도 싸게 사보겠다고, 혹은 공짜로 주는 사은품을 타보겠다고 새벽부터 몰려드는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운 모습 속에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꾸미는 데는 신경 쓸 수 없게 된, 살림살이에 찌들은 기혼 여성들의 비애가 묻어난다.
요즘 입버릇처럼 '나는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내 부인은 저러면 끝이야'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자아 실현'을 위해 투자하지 않고 자신을 가꾸는데는 전혀 무관심한 인생을 살았던 어머니의 삶, 그리고 그러한 인생의 허무함을 자식들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불합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살림이다 양육이다 끊임없이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기는커녕 밖에서 '아줌마'소리나 들으면서 무시당하고, 실질적인 경제력을 갖지 못해 자기를 위해서 돈 한푼 쓰는 것에도 벌벌 떨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 삶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젊은 세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아줌마가 되는 것은 즉 결혼은 여전히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 이유로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든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아가씨' 같은 외모를, 남편과는 '연인'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눈물겹도록 필사적이다.
이제 젊은 기혼 여성들은 아줌마가 아닌, 신세대 프로 주부로서의 면모를 연출하기 위해서 남편과 아이와 집안을 누구보다 세련되게 꾸미고, 특히 자신을 가꾸는 데에도 아낌없이 투자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결혼한 여성들을 모두 '아줌마'로 낙인찍는 것에 도전하고 '저항'하고자 한다. '난 그런 궁상맞고 푹 퍼진 아줌마들하고는 달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싶어하고 어딜 가나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모습으로 대우받길 원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한 조건

슈퍼우먼들에게만 열려있는 것 같은 사회적 성공과 자아 실현의 높은 문턱은 많은 여성들을 좌절하게 만들면서 남자의 경제력에 대한 의존을 유혹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과연 이 여성들은 아버지의 벌이에 기대어 구차하게 살아가야 했던 어머니의 전철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진정으로 '아줌마'로서의 삶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보다는 이제까지 혹은 지금도 여전히 아줌마들이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 소중한 일을 남자, 사회가 함께 나눠야함을 역설할 때 오히려 가능해 질 것이다.
또한 외적인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만을 중시하지 않고, 젊은 시절의 꿈과 비전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것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멋진 '아줌마'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더 이상 '아줌마'가 여성들에게 수치스러운 자존심 상실의 표상으로 자리잡지 않고 여성들에게 죽어도 피하고 싶은 낙인이 되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때쯤 되면 '아줌마'라는 말로 여성들을 끊임없이 낙인찍고 구분하고 기죽이는 일 자체가 전혀 의미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창경궁을 거닐었을 어머니, 그들을 변하게 한 결정적 매개체는 무엇이었을까? 나뭇잎과 꽃잎이 곱게 말려져 있는 그들의 옛 앨범을 덮으며 잠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글 - 한설아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석사과정 졸업. 저서로는
<낭만적 결혼의 환상과 위력> <새로 쓰는 결혼이야기2> <당신이 가장 되기 싫은 여자는? 아줌마? 페미니스트?> 등이 있다